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스트리트 보이즈 (문단 편집) === 2000~2006 === 2000년 Black & Blue를 발매했다. BSB의 마지막 히트 앨범. 대표곡으로는 Shape Of My Heart가 차트 9위에 오르며 앨범에서 낸 싱글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미국에서의 판매량은 8x플래티넘(실질 판매량 540만추정). 음반 판매량이 잘 나오던 시절임을 감안해도 높은 판매량이지만, 그 전 두 앨범이 천만 장을 넘었던 BSB로써는 상당히 아쉬운 성적이었다. 전세계 도합 판매량은 1600만 장.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하필 같은 시기에 비틀즈의 미국/영국의 넘버원 히트곡만 모은 베스트 앨범 '1'이 나와버리는 바람에 몇주동안 2위로 밀리는 일도 있었다. 이걸 두고 죽은(엄밀히 말하면 해체된 밴드지 존 레논을 제외하곤 죽은 건 아니지만...- 당시 조지해리슨은 사망 전) 비틀즈가 산 BSB를 밀어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또한 이 시점이 바로 BSB가 내부적으로 굉장히 안 좋았던 시기이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큰 슬럼프를 겪던 AJ는 약물에 의존하기 시작하여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AJ의 약물 중독으로 인해 공연 활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되고, 그룹 멤버들 간에 다툼이 발생한다. 결국 활동 중단에 들어갔고 리더 케빈이 AJ의 호텔 방문을 부수고 들어가 재활 치료를 권유하는 사태까지 가게 된다. 다행히도 재활 치료 후 2001년에 공연을 재개하며 나름 유종의 미를 거두며 B&B 시절의 활동을 종료하게 된다. 2001년 베스트앨범 Greatest hits-chapter one을 발매. 미발표 신곡 1곡 Drowning과 그동안의 히트곡 12곡을 모아 냈다.[* 유럽 및 아시아버전 베스트앨범은 비공식 1집 히트곡을 포함해 16트랙] 1993년 이후 끊임없이 활동을 하였던 BSB는 이 앨범을 낸 후 4년 동안 휴식기를 가지게 된다. 미국에서 백만 장이 팔렸으며 Drowning이 빌보드 28위에 올랐고, 그 외 나라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다른 멤버들은 딱히 주목할 만한 활동을 하지 않았고 팀 내의 마스코트 닉 카터가 팝락 앨범을 내며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엔싱크]]의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비교하면 많이 밀렸다. Now Or Never라는 제목으로 2002년에 발매한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17위와 판매량 50만 장이라는 기대 한참 이하의 성적만을 내는 데 그쳤다. 유럽에서의 성적도 중위권에 머무르며 신통치 않았던 건 마찬가지. Help Me라는 첫 싱글이 그나마 주요 차트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 뒤의 싱글들은 완전히 묻혀 버렸다. 오히려 형 닉의 후광으로 솔로 활동을 하던 [[애런 카터]]가 쏠쏠한 인기를 얻고 있던 때였다. 닉은 사실 팀 내에서의 인기를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십대 닉의 얼굴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비교되는 경우가 많았고, 여성팬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 때문에 사실상 닉은 BSB의 [[얼굴마담]]이었다. 그의 솔로 앨범 실패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2000년대 초반에 이미 백스트리트 보이즈는 베스트 앨범을 끝으로 저무는 해였고, 당시 떠오른 [[넬리]], [[에미넴]], [[50센트]] 등 이미 미국 팝 장르 음악계는 흑인 음악으로 이동하는 시점이었다. 팝 장르가 아닌 락 장르 시장은 당시 신예 인기 밴드들이 나오기 시작했기에 닉 카터가 뚫고 들어가기에는 어려웠다. [[엔싱크]]의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팝의 동향을 영리하게 판단하여 최고의 흑인 프로듀서 팀벌랜드와 함께 작업을 해 시대에 부응하는 팝 음악을 만들어낸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 저스틴은 또한 간지나는 춤과 비트, 본인의 섹시미를 무기로 하여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에서 300만 장을 팔고 해외에서도 여러 차트의 정상에 올라선 것이 그를 증명한다.[* 애초에 엔싱크의 2001년작 ‘Celebrity’ 부터 기존의 맥스 마틴 스타일을 버리고 로드니 저킨스나 퍼렐 윌리엄스와 작업하여 틴팝의 약세에도 불구하고 Top 10곡이 3개나 되었다. 이 앨범 분위기를 연장하여 흑인음악을 전면에 내세운게 저스틴의 솔로 데뷔작이다.] 반면 닉 카터는 본인이 어릴 적 좋아하던 80년대 락을 전면으로 내세웠는데, 앨범의 작곡진들을 보면 그렇게 공감하기는 어려운 느낌이었다. BSB의 수많은 히트곡을 만든 [[맥스 마틴]]을 프로듀서로 하여 뭔가 80년대 락 스타일스러운 곡을 만들었지만, 흑인음악으로 완전히 판도가 바뀐 미국 팝 장르 음악계 트렌드를 읽지 못해 맥스 마틴의 작곡은 점점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또한 80년대를 강조하고 싶었다면 [[본 조비]]나 [[저니]] 등과 같은 [[팝 메탈]] 밴드의 곡을 받았으면 모를까, 여전히 틴팝 작곡가들에게 곡을 받았기 때문에 스타일도 거기서 거기였다. 같은 시기에 비슷한 음악 스타일로 성공을 거둔 [[에이브릴 라빈]]에 비교하는 이들도 있지만 라빈은 조숙하고 반항적인 십대 소녀의 이미지가 당시에는 매우 신선해서 먹혔다. 반면 닉 카터는 대중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자신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려고 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이미 보유하고 있던 인기를 바탕으로 그냥 시도해본 꼴이 된 셈이다. 솔로 활동 시절 무려 100kg 가깝게 살이 쪘다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로 몸무게가 나갔다. 실제로 당시 사진들을 보면 불과 3년 전 BSB에서의 모습과는 딴 사람일 정도로 심하게 망가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012년 정도에는 다시 그룹 활동을 하며 몸무게가 정상이 되었고 어느정도 재건했지만 떨어진 인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또한 할리우드의 사고녀 [[패리스 힐튼]]과 연애를 하며, 그나마 있었던 소녀 팬들도 우수수 떨어져 나가버렸다. 스스로의 관리 부족으로 자신의 인기 기반을 차버린 셈. 2005년 5집 [[Never Gone]]를 발매했다. 12번 트랙인 케빈의 돌아가신 아버지 추모곡 Never Gone에서 이름을 따왔다. 발표 전 [[보이즈 투 멘]]과 듀엣을 한다는 소식도 있었고 유출곡들 또한 흑인음악 풍의 소울, 알앤비, 팝발라드 풍이 주류였다. 그러나 그들의 오랜 파트너 맥스 마틴이 팝락 스타일로 가자고 내세웠고, 완성된 앨범은 그간 유출곡들과는 완전히 딴판인 팝락 스타일이었다. 흑인음악 돌풍 이후 주춤하던 맥스 마틴은 [[켈리 클락슨]], [[핑크(가수)|핑크]] 등과 작업하며 팝락으로 다시금 재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백스트리트 보이즈와는 그다지 궁합이 좋지 않았는지 다른 작곡가의 Incomplete는 빌보드 13위를 차지하고 여러나라에서 성공을 거둔 반면, 맥스 마틴의 곡은 하위권을 해매며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도 빌보드 앨범 3위를 차지하며 미국내 백만장을 판매했고, 전세계 3백만장이라는 나름 선전한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이후에 2개의 앨범을 더 발표하였지만 오히려 이 앨범이 더 나았다 싶을 정도로 판매고는 더욱 떨어졌다. Never Gone 활동을 마치고 난 후 브라이언이 Welcome Home이라는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기본적으로 [[CCM(음악)|CCM]] 스타일이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며 유년기 시절부터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해왔던 브라이언은 BSB 활동 때부터 CCM 관련 음악을 하고 싶었다고 밝혀왔었다.] 컨트리나 팝발라드도 포함되어 있다. 성적은 빌보드 차트 74위, 판매고는 10만 장을 기록했다. 사실 2006년 발표한 Unbreakable보다 솔로앨범이 더 나은 퀄리티라고 여겨지지만, 인기가 많이 내려간 상태여서인지 그닥 큰 반향은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